임진왜란 질문이요 임진왜란 때 선봉장 고니시 가 1만 8천 명 이끌고 올때
임진왜란 때 선봉장 고니시 가 1만 8천 명 이끌고 올때 타고 온 배 의 숫자가 700척 이죠?질문자님께서 임진왜란에 대해 여러 궁금한 점을 질문해주셨습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먼저,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병력 규모와 배의 수에 대해 질문주셨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끌었던 선봉 부대는 약 1만 8천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일본의 초기 침략 병력 약 16만여 명 전체가 한반도로 이동할 때 사용한 선박은 대략 700여 척에서 1,000여 척 정도로 파악됩니다 [, ].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700척은 고니시 선봉 부대 단독으로 사용한 배의 숫자라기보다는, 임진왜란 초기에 투입된 총 병력을 수송했던 규모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16만여 명의 병력을 운송하기 위해 7,000척의 배가 필요하다는 계산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수륙병진(水陸竝進) 전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일본이 조선 침략 초부터 이 전략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합니다. 조선의 지형과 상황을 고려할 때, 육군 단독으로는 보급의 어려움이 예상되었고, 해상에서의 지원 없이는 장기적인 전쟁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일본군 수뇌부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 바다를 통해 빠르게 병력과 물자를 보급하고, 육군과 해군이 동시에 움직이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하지만 실제 전쟁의 전개 양상은 일본의 계획과는 달랐습니다. 한성이 조기에 함락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부대가 함경도까지 진출하는 등 육군 전선에서는 승승장구했지만, 해상에서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조선 육군의 경우 전쟁 발발 직후 병력이 최악의 상황이었고,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연패했습니다 , ].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며 승리했습니다 [.일본군은 보급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보급로 확보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보급선에 호위함이 동행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초기부터 부산진 해전에서 조선의 정발 장군이 분전하는 동안 왜군을 많이 물리치고 한산도 대첩, 명량해전 등에서 일본 수군에 연이은 대승을 거두면서, 일본은 해상권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 ]. 이는 일본이 수륙병진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 수군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일본은 보급선 호위를 위한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거나 안정적인 해상 수송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됩니다.